제목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던 책. 같은 등장인물인데 이름을 두 개로 표현해서 초반에는 살짝 헷갈렸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작가’의 직업을 가진 인물들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스토리이다.

크게 주인공인 의사에서 작가가 된 윌리 어셴든,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자서전을 쓰게 된 작가 로이(앨로이 키어), 저명한 작가 에드워드 드리필드,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전 부인 로지가 등장한다.

초반에 작가가 밝혔듯이 이 책은 ‘로지’라는 캐릭터가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남편 에드워드 드리필드가 있지만, 수 많은 남자들과 외도를 한다. 마지막에는 로지는 남편을 버리고 다른 인물과 미국으로 도망간다. (그 인물들에는 주인공인 윌리 어셴든도 있었다. 로지가 다른 남자와 바람피는 현장을 목격하기도 하고 초반에는 부인했지만, 그 후에는 그녀가 그 많은 남자들과 바람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부분이지만,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이 모든 사실들을 알고도 로지를 추궁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나는 살짝 이해가 안되긴 했다. 아기가 죽었기 때문에 아내가 충격을 먹었다고 해도, 묵인하는 것이 과연 그 상황에서 무엇을 도와주었을까?


141pg-143pg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름다움을 숙고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

키츠가 쓴 시 엔디미온의 첫 구절(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 ever)을 보면 키츠보다 더한 거짓말을 한 시인은 없을 듯하다.

아름다운 것이 마법 같은 감성을 불러일으킬때마다 내 마음은 즉시 방황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어떤 풍광이나 그림을 몇 시간씩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황홀감이고 배고픔만큼이나 단순하다. 이러쿵저러쿵 떠들 만한 거리가 아닌 것이다.

장미 향기와 같아서 한번 냄새를 맡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것이 예술 비평이 지루한 이유다. 아름다움과 무관한, 즉 예술과 무관한 내용이라면 모르겠지만, 세상의 모든 그림들 중에서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할 만한 티치아노의 그리스도의 매장에 대해 모든 평론가들은 그저 가서 직접 보라고 말하면 된다.

그것 말고 더 할 말이 있다면 역사나 전기 정도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다른 특성들 - 숭고함, 인간적 관심, 부드러움, 사랑 - 을 덧붙인다. 아름다움이 그들을 오래 만족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완벽하지만 완벽함은 (인간의 본성상) 사람들의 주의를 잠시 잡아 둘 뿐이다.

어느 수학자가 페드르를 보고 나서 “Qu’est-ce que ça prouve?”하고 물었다면 그가 아무리 평소 어리숙해 보였다고 해도 그리 바보는 아니다.

파에스툼에 있는 도리아 양식의 신전이 시원한 맥주 한 잔보다 더 아름다운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아름다움과 무관한 것들을 끌어댄다면 모를까. 아름다움은 막다른 골목이고, 한번 도달하면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산봉우리다. 그것이 우리가 티치아노보다 엘 그레코에, 라신의 완전한 대작보다 셰익스피어의 불완전한 업적에 도취하는 이유다.

하지만 대체 누가 만족하기를 원하는가?

배부른 것이 진수성찬 못지않게 좋다는 말은 어리석은 자에게나 해다오딘다. 아름다움은 지루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앨로이 키어는 어셴든에게 당시 대세였던 유미주의에 근거해 에드워드 드리필드를 위대한 작가라고 추켜세우지만 어셴든은 그의 주장을 일축한다.

아름다움은 완전하기 때문에 순간의 감성을 자극할 수는 있어도 필연적으로 지루함을 유발하므로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에드워드 드리필드가 전업 작가로서 오랫동안 많은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작가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한다.

성공한 작가가 반드시 위대한 작가는 아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무수한 작가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서머싯 몸에게 둘의 확연한 차이는 ‘지속성’에 있다.

208pg

그녀는 달빛에게만 향기를 내어 주는 밤의 은빛 꽃송이 같았다.

211pg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인간의 복잡성과 변덕, 부조리를 더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213pg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 밖으로 발을 내딛자 새벽빛이 계단을 뛰어 올라온 고양이처럼 달려와 맞이했다.

이 표현을 접했을 때, 정말 작가들의 표현력은 다르구나 생각했다. 새벽에 해가 뜨고 문을 열었을 때 들어오는 빛을 계단을 뛰어 올라온 고양이라고 표현을 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302pg

‘케이크와 맥주’라는 표현은 작중 어디에도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에드워드 드리필드가 노년에 명성을 얻은 뒤 자주 동네 펍에 내려가 평범한 사람들과 담소를 즐기며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언급될 뿐이다.

거장의 반열에 오른 뒤 그가 찾았던 것은 값비싼 술이 아니라 서민들이 즐겨 마시는 맥주였다. 작품 초반에 성공한 작가 앨로이 키어가 사교 클럽에서 와인 담당 직원에게 우아한 언변을 뽐내며 독인산 고급 백포도주를 주문하는 장면과 대조를 이룬다.